미국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가운데 처음으로 문을 닫는 사례가 나왔다. 자산운용사 해시덱스는 뉴욕증권거래소 아르카에서 'DEFI' 종목코드로 거래돼온 비트코인 현물 ETF를 청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종 거래일은 8월 17일이다.

해시덱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서 펀드를 청산하고 자산을 현금으로 투자자에게 분배하겠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결정 배경으로 운용자산 규모와 거래 유동성, 운영 비용, 투자자 관심도, 그리고 자사 상품군 안에서 이 펀드가 차지하는 위치를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보유 비트코인 약 225개를 매각한 뒤 현금 분배는 8월 28일 전후로 이뤄질 예정이다.

운용자산 1,470만달러, IBIT의 3,200분의 1

DEFI의 순자산은 7월 30일 기준 약 1,470만달러였다. 원화로 약 210억원이다. 이 펀드가 기록한 최대 운용자산도 1,754만달러에 그쳤다. 한 번도 의미 있는 규모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비교 대상을 놓고 보면 격차가 분명해진다.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 전체 순자산은 약 776억달러다. 이 가운데 블랙록의 IBIT 한 곳이 약 470억8,000만달러를 갖고 있다. 시장의 60% 이상이 단일 상품에 몰려 있는 구조다. DEFI의 1,470만달러는 IBIT의 3,2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수료로 버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DEFI의 보수율은 연 0.25%로 업계 최저 수준과 같았다. 운용자산 1,470만달러에 0.25%를 곱하면 연간 수수료 수입은 3만7,000달러 남짓이다. 원화로 5,000만원대다. 펀드 하나를 유지하는 데 드는 회계감사, 수탁, 상장 유지,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수수료를 남들과 똑같이 낮췄지만 규모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 낮은 수수료가 곧 적자가 된다.

먼저 나온 상품이 다 가져가는 시장

DEFI는 2022년 비트코인 선물 ETF로 출발해 2024년 3월 현물 ETF로 전환했다. 블랙록을 비롯한 대형 운용사들이 2024년 1월 현물 ETF를 내놓은 것보다 약 두 달 늦었다.

ETF는 이 두 달이 결정적인 상품이다. ETF의 거래 비용은 수수료만이 아니라 호가 간격에서도 발생한다. 거래가 많은 상품일수록 사려는 값과 팔려는 값의 차이가 좁아지고, 그만큼 투자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비용이 줄어든다. 그래서 자금은 이미 거래가 활발한 쪽으로 더 몰리고, 늦게 나온 상품은 수수료를 아무리 낮춰도 이 격차를 뒤집기 어렵다. 같은 비트코인을 담는 상품이라면 굳이 거래가 뜸한 쪽을 고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레이스케일의 GBTC는 현물 ETF로 전환한 뒤 274억7,00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먼저 자리를 잡았던 상품도 조건이 불리하면 자금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례다.

시장이 죽은 것과 정리되는 것은 다르다

이번 청산을 비트코인 수요가 사라진 신호로 읽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가 담고 있는 자산은 여전히 776억달러 규모다. 줄어든 것은 시장 전체가 아니라 상품의 가짓수다.

다만 자금 유입 속도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올해 월별 자금 흐름을 보면 4월 19억7,000만달러 순유입, 5월 24억3,000만달러 순유입에서 6월에는 45억2,000만달러 순유출로 방향이 바뀌었고, 7월에는 2억500만달러 순유입에 그쳤다. 7월 수치는 2024년 1월 상품 출시 이후 가장 낮은 월간 순유입이다. 6월의 대규모 이탈은 멈췄지만 자금이 다시 들어오는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비트코인 가격도 이 흐름과 맞물려 있다. 7일 오후 1시 44분 기준 비트코인은 6만4,196달러로 24시간 전보다 0.62% 내렸다.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2.28% 오른 수준이다.

지금 확인할 것

확인된 사실은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 한 종목이 규모 부족으로 청산된다는 것, 그리고 시장 자산의 60% 이상이 단일 상품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것은 이번이 마지막 청산인지 여부다. 운용자산이 1억달러에 못 미치는 소형 상품이 여럿 남아 있고, 이들이 처한 수수료와 비용 구조는 DEFI와 크게 다르지 않다.

DEFI 보유자라면 챙겨야 할 날짜가 두 개다. 8월 17일까지는 시장에서 직접 팔 수 있고, 그 뒤에는 8월 28일 전후 현금 분배를 기다려야 한다. 시장 전체를 보는 입장이라면 앞으로 확인할 기준은 월간 순유입이 7월의 2억500만달러선을 회복하는지, 그리고 IBIT 외의 상품에서도 자금이 늘어나는지다. 한 상품에만 자금이 몰리는 구조가 이어지면 소형 상품의 청산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