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국제신용평가사 S&P가 오라클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내렸다. 창사 이래 최저 등급이자, 투기등급까지 단 한 계단 남은 자리다. 사유는 명확했다. 오라클의 최대 고객 중 하나인 오픈AI가 신용 리스크로 지목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악재다. 그런데 등급 하향 발표 당일 오라클 주가는 오히려 2.65% 올랐다. 다음 날도 상승세가 이어졌다. 반면 오라클의 5년물 CDS, 이 회사가 부도날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료는 198bp까지 뛰며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같은 회사, 같은 주, 같은 뉴스를 두고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정반대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이 엇갈림의 배경에는 숫자가 있다. S&P는 등급을 내리면서 오라클의 FY27 설비투자 전망을 기존 600억 달러에서 900억에서 950억 달러로 크게 올려 잡았다. 그 결과 잉여영업현금흐름 전망은 마이너스 420억 달러로, 기존 마이너스 240억 달러의 거의 두 배로 악화됐다. 이 정도 자금을 채우려고 오라클은 방향을 틀었다. 부채를 더 늘리는 대신 유상증자를 택한 것이다. 올해 2월 전환우선주로 50억 달러를 조달한 데 이어, 연내 2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조달 부담이 채권자에서 주주 쪽으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같은 주 영국에서는 다른 층위의 뉴스가 나왔다. 영란은행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오라클 네 곳을 금융시스템의 "핵심 제3자"로 지정하고 7월 13일부터 직접 감독에 들어갔다. 이 네 회사가 클라우드와 AI 인프라를 얼마나 촘촘히 쥐고 있는지 규제 당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다만 네 곳 중 투기등급까지 한 계단 남은 곳은 오라클뿐이다.
주식시장이 이 뉴스를 웃으며 받아들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다음 날인 7월 14일, 모건스탠리는 하이퍼스케일러 전체의 캐펙스 전망을 2027년과 2028년 각각 9%, 10% 상향했다. 이번부터 스페이스X의 지상 AI 컴퓨팅 투자까지 처음 포함시키면서, 2027년 약 1조 2,300억 달러, 2028년 약 1조 4,000억 달러라는 숫자가 나왔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일반 SaaS에서 AI SaaS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수요가 견고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오라클과 달리 유상증자 부담이 없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이 국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채권시장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더 근본적이다. 신용등급과 CDS는 이 회사가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지를 본다. 캐펙스는 계속 커지는데 현금흐름은 더 깊은 마이너스로 가고, 그 구멍을 주식을 계속 찍어내 메우고 있다면, 이 순환이 지속되려면 결국 오픈AI 같은 최종 고객이 그 대가를 제때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 신용 시장은 늘 주식 시장보다 먼저 이 지불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흐름이 남 일이 아닌 이유는 결국 이 캐펙스의 종착지가 메모리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메모리 업체들이 하이퍼스케일러와 맺는 장기공급계약에 선수금과 담보 조건이 얼마나 까다롭게 들어가는지가, 이 신용 리스크가 실물로 옮겨붙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오라클의 추가 등급 하향 여부, 하반기 200억 달러 유상증자가 시장에서 무리 없이 소화되는지, 데이터센터 완공 지연이 더 나오는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발화하면 AI 캐펙스가 만들어낸 메모리 수요의 한계 구매자가 흔들린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
주가만 보는 사람은 이 뉴스를 호재로 읽는다. 캐펙스가 늘어난다니 AI 붐이 계속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채권을 보는 사람은 같은 뉴스를 경고로 읽는다. 그 캐펙스를 감당할 현금이 없어 빚 대신 주식을 찍어내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두 시장 중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신용 시장의 시계는 대체로 주식 시장의 시계보다 먼저 움직여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