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 인사이트=신형탁 기자 |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가상자산 발행에 관한 별도 규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SEC는 18일(현지시간) '레귤레이션 크립토 애셋'을 제안했다.

가상자산을 증권법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팔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조문화한 규정안이다.

1933년 증권법을 비켜 가는 통로

규정안의 뼈대는 면제다. 일정 요건을 지키면 1933년 증권법에 따른 등록 없이 가상자산 투자계약을 발행할 수 있게 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토큰을 팔려면 증권 등록을 하거나, 증권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둘 다 부담이 커서 상당수 프로젝트가 미국 밖으로 나갔다.

규정안은 그 사이에 별도 통로를 냈다. SEC는 이를 가상자산에 맞춘 체계라고 설명했다.

500만달러부터 7500만달러까지 3단계

면제는 규모에 따라 세 갈래다.

초기 단계인 스타트업 면제는 최대 4년 동안 500만달러까지 허용한다. 자금조달 면제는 두 층으로 나뉜다. 1단계는 12개월간 2000만달러, 2단계는 12개월간 7500만달러다.

2단계 한도인 7500만달러는 최근 환율 기준으로 100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중견 프로젝트가 등록 절차 없이 조달할 수 있는 규모가 열린 셈이다.

스타트업 면제4년간 500만달러
자금조달 면제 1단계12개월간 2000만달러
자금조달 면제 2단계12개월간 7500만달러
공시 항목10개 (규정 103)
계속공시 서식연차 1-KC·반기 1-SC·수시 1-UC
의견수렴60일

*출처=SEC 규정 제안서

공시 10개 항목과 계속공시 의무

면제가 공짜는 아니다. 규정 103은 발행자가 알기 쉬운 말로 공시해야 할 항목을 열 가지로 정했다.

계약 조건과 발행 조건, 자산의 내용, 경영진과 이해상충, 네트워크 개발 계획, 보안, 토큰 경제구조, 거버넌스, 생태계, 위험요인이 여기 들어간다.

홍보물과 공개 발언이 공시 내용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조건도 붙었다. 백서와 마케팅 문구가 따로 노는 관행을 겨냥한 대목이다.

자금조달 면제를 쓴 발행자는 판매가 끝난 뒤에도 보고를 이어가야 한다. 연차보고서 1-KC, 반기보고서 1-SC, 수시보고서 1-UC를 낸다. 상장사의 사업보고서와 비슷한 구조다.

증권성이 '소멸'하는 조항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규정 400이다. 여기에는 투자계약이 없어진 것으로 보는 안전장치가 담겼다.

발행자가 약속했던 핵심 경영 활동을 마치고 정해진 서식(Form TR)을 제출하면, 해당 투자계약은 소멸한 것으로 간주된다.

토큰의 증권성을 판단할 때 미국 법원은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노력에 기대 이익을 기대하는가'를 따져 왔다. 개발팀이 할 일을 다 하고 네트워크가 자립하면 그 전제가 사라진다는 논리를, 규정안이 절차로 옮긴 것이다.

다만 무엇이 핵심 경영 활동에 해당하는지는 발행자가 스스로 밝힌 약속에 달렸다. 이 부분이 실무에서 어떻게 판정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클래리티법과는 다른 층위

비슷한 시기에 거론된 클래리티법과는 성격이 다르다.

클래리티법은 의회가 만드는 법률이다. 가상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를 가르고, 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가운데 어디가 관할하는지를 정한다. 2025년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 머물러 있다.

이번 규정안은 SEC가 자기 권한 안에서 만드는 하위 규정이다. 관할을 새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증권으로 분류되는 발행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정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백악관 행사에서 상원에 클래리티법 처리를 요구했다. 규정안이 나온 다음 날이었다.

즉 입법과 규정이 각각 다른 층위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둘 다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 최종 그림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아직은 제안 단계

규정안은 확정된 규칙이 아니다. 연방관보에 실린 뒤 60일 동안 의견을 받는다.

이후 SEC가 의견을 반영해 최종안을 의결해야 효력이 생긴다. 통상 이 과정에 수개월이 걸린다.

국내 투자자에게 곧바로 적용되는 내용도 아니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 중이고, 발행 규율은 별도 논의 단계에 있다.

그럼에도 눈여겨볼 이유는 있다. 미국이 토큰 발행 규칙을 세우면 글로벌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방식과 상장 경로가 바뀐다. 60일 의견수렴 기간에 어떤 반론이 나오는지가 다음 관전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