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 인사이트=신형탁 기자] 2026년 상반기, 비트코인은 18.5% 빠졌다. 가상자산 시장 전체로 넓혀도 17.8% 하락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Circle)의 주가는 42% 올랐다. 코인 시장이 무너지는 동안, 코인으로 먹고사는 회사의 주식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이 괴리는 우연이 아니다. 이번 사이클에서 자본이 무엇에 베팅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신호다.
먼저 코인 시장이 얼마나 식었는지부터 보자. 중앙화 거래소 거래량은 2025년 월평균 1조 6천억 달러에서 2026년 5월 7천억 달러로 반토막 났다. 디파이에 묶인 자금(TVL)도 2025년 말 1,236억 달러에서 780억 달러로 주저앉았다. 공포탐욕지수는 2월에 5까지 떨어졌다. 0에 가까울수록 극단적 공포인 지표에서 5는 사실상 바닥이다. 숫자만 보면 명백한 겨울이다.
그런데 이 겨울에 돈을 번 쪽이 있다. 금을 캐는 사람이 아니라 곡괭이와 청바지를 파는 사람들이다.
코인베이스(Coinbase)를 보자. 시가총액 393억 달러의 이 회사가 고객으로부터 수탁받아 관리하는 자산은 2,940억 달러다. 전체 가상자산 시가총액의 12%가 이 한 회사를 거쳐 간다는 뜻이다. 코인 가격이 어디로 가든, 사고팔 때마다, 맡길 때마다 이 회사는 수수료를 받는다. USDC 잔고는 800억 달러를 넘겼고, 새로 시작한 예측시장 서비스만으로도 연환산 매출 1억 달러를 찍었다.
서클은 더 극적이다. 1분기 USDC 유통량은 770억 달러로 전년 대비 28% 늘었고, 온체인 거래량은 21조 5천억 달러로 무려 263% 폭증했다. 이 회사 매출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맡긴 달러를 미국 국채에 넣어 굴리는 이자 수익이다. 코인이 오르든 내리든, 스테이블코인을 쓰는 사람이 늘기만 하면 돈이 들어온다. 가격 변동과 무관한 현금흐름이다.
수탁 전문 비트고(BitGo)는 기관 고객이 5,569개로 1년 만에 42% 늘었다. 가격 효과를 걷어낸 순수 플랫폼 자산만 630억 달러다. 실물자산 토큰화 인프라의 1위 사업자 시큐리타이즈(Securitize)는 이 시장 점유율 15.4%를 쥐고 있다. 블랙록, 아폴로 같은 이름들이 온체인으로 자산을 올릴 때 통과하는 관문이다.
패턴이 보이는가. 시장은 코인 가격이 아니라 "누가 이 판의 도로와 항만을 소유하는가"에 프리미엄을 매기고 있다.
이 흐름을 제도가 밀어주고 있다. 미국에서는 디지털자산 시장 구조를 정리하는 클래리티법(CLARITY Act)이 상원 위원회를 통과했고,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는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이미 제정돼 세부 시행규칙 발표를 앞두고 있다. 규칙이 정해진다는 건 은행과 핀테크가 이 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판이 커지고 있다. 전통 은행과 카드사가 스테이블코인에 직접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발행사에 결제망을 종속당하지 않기 위해서. 둘째, 고객이 맡긴 달러의 이자를 서클 같은 발행사가 독식하는 구조를 깨기 위해서. 셋째, 결제 기준 이틀 걸리던 환전을 즉시로 바꾸기 위해서다. 수천억 단위 자금이 오갈 때 이틀치 이자는 결코 작지 않다.
더 큰 그림은 실물자산 토큰화, RWA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공개 블록체인 위의 RWA 규모를 2023년 19억 달러에서 2026년 3월 265억 달러로 계산했다. 그리고 진보 시나리오 기준 2035년 88조 달러까지 커진다고 본다. 10년에 약 2,900배다. 토큰화 증권만 떼어 봐도 2023년 8억 달러에서 2026년 3월 150억 달러로 늘었다. 1993년 첫 ETF가 나온 뒤 30여 년 만에 12조 달러 시장이 된 것과 같은 곡선의 초입이라는 게 BCG의 판단이다.
여기서 핵심 통찰이 나온다. 자산 가격은 사이클을 탄다.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른다. 그러나 인프라는 사이클과 무관하게 깔린다. 한번 깔린 배관은 물이 많이 흐르든 적게 흐르든 통행료를 받는다. 변동성에 베팅하는 것과 구조 변화에 베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코인 차트만 들여다본 사람은 2026년 상반기를 "하락장"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은 이미 다음 10년의 배관을 누가 소유할지를 두고 움직였다. 겨울에 무엇이 자랐는지 보는 눈이, 봄이 왔을 때의 수익을 가른다.


